가장이라는 말은 서류에 적히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결혼을 했을 때도, 아이 이름을 올렸을 때도 그 말의 무게를 정확히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형식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단어가 몸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말문이 막혔던 그날 저녁
아내와 마주 앉아 생활 이야기를 하던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가게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다 돈 얘기로 넘어갔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 달은 조금 빠듯할 것 같아.” 그리고 잠시 뒤 덧붙였다. “다음 달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없었고, 어떻게든 되겠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몇 번이나 그렇게 넘겨왔다는 걸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 표정을 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무거웠다. 그날 처음으로 가장이라는 말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미안하다는 말도, 해결하겠다는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책임은 말보다 먼저 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지금 이 집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아내는 가게를 시작했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꾸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월급은 들어오지만 고정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를 보태기도 빠듯한 상태였다. 양육비, 대출 이자, 월세, 보험료가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고 나면 통장에 남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도 나는 매번 “다음 달에는 나아질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달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가장이라는 건 크게 벌어오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부족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라는 걸.
밤에 버는 돈을 떠올리다
그날 이후로 퇴근길이 더 무거워졌다. 집에 들어가기 전, 차 안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대리운전 앱을 켜본 날도 있었다. 화면에 뜨는 콜들을 보면서 계산했다. 밤에 나가면 당장 돈은 벌 수 있었다. 한 달이면 꽤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밤에 일하면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잠을 못 자니 다음 날 회사 일도 엉망이 됐다. 며칠만 그렇게 해도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허리가 아팠고,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아빠 오늘도 안 왔어?”라고 아내에게 물어봤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는 오래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의 무게는 선택지를 줄였다
그때부터 선택지가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밤을 쓰는 일, 몸으로 때우는 일, 단기간에 버는 일. 그중 어떤 것도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도 현실이었다. 20대처럼 밤새워 일하고 다음 날 멀쩡할 수 없었고, 30대처럼 무리해도 금방 회복되지 않았다.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은 하고 싶은 걸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할 수 있는 걸 고르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됐다.
그래서 다른 길을 생각하게 됐다
늦더라도 괜찮았다. 느려도 괜찮았다. 대신 아이 곁에 있으면서, 아내에게 말문이 막히지 않으면서,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그렇게 몸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1년 후 2년 후에는 남는 게 있는 일. 그런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그 길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가장이라는 말 앞에서 말문이 막혔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
이 글을 남기는 이유
이 글은 가장을 정의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40대가 되어 가장이라는 역할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 무게를 느낀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가볍게 선택할 수 없게 됐다. 모든 선택 뒤에는 가족이 있었고,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가족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내가 어떤 기준을 먼저 세우게 되었는지,
왜 당장의 선택보다 오래 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게 됐는지에 대해 조금 더 이어서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