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라는 역할을 실감하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신경 쓰게 된 건 돈의 액수가 아니었다. 가족 앞에서 얼마를 벌어오느냐보다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웠던 건 불안한 얼굴이었다
아이 앞에서는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고, 아내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가 “아빠!” 하고 달려왔다.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안아줬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숫자가 돌아갔다. 이번 달 남은 돈, 다음 달 나갈 돈,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계산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말수가 줄었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다. 아내가 “오늘 뭐 먹을래?” 물어봐도 “아무거나”라고만 답했고, 아이가 장난감을 보여줘도 제대로 봐주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많이 힘들어?” 그때 깨달았다. 내가 감추려고 했던 불안이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는 걸.
가장으로서 가장 피해야 할 건 돈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 불안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기준부터 달라야 했다
그렇다고 당장 돈이 더 나오는 방법이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야근을 더 한다고 해결되지 않았고, 월급이 갑자기 오를 일도 없었다. 부업을 한다고 해도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벌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로.
밤에 나가서 대리운전을 하면 한 달에 백만 원 정도는 더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아이 얼굴을 못 보게 되고, 주말에는 잠만 자게 된다. 그게 한 달이면 괜찮을지 몰라도 1년, 2년을 버틸 수 있을까.
배달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몸으로 버는 돈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갉아먹는다.
오래 갈 수 없는 선택은 답이 아니었다
가족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잠을 줄여서 버는 돈, 몸을 갈아서 버는 돈은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부터 무너질 게 분명했다.
한 달만 해보자고 시작했던 일들이 결국 석 달, 반년으로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몸이 상하고 마음이 무너진다. 그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가족 앞에서 웃을 수가 없다.
그건 가족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버티는 척하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위한다면서 정작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 늦더라도 오래 가는 방식을 찾게 됐다
그때부터 선택의 기준이 분명해졌다.
- 당장은 돈이 안 돼도
- 시간이 쌓이는 일
- 집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
- 몇 년 뒤에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일
가족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부터 지속 가능한 상태여야 했다. 한 달 버티고 쓰러지는 것보다 1년을 천천히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 기준으로 보니 선택지가 확 줄었다. 대리운전도, 배달도, 야간 알바도 다 기준에 맞지 않았다. 그러면 남는 건 뭘까. 집에서 할 수 있고, 시간이 쌓이면 가치가 생기는 일. 그게 뭐가 있을까.
그렇게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기준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선택을 고민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
이 글은 가장을 정의하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40대 가장으로 살면서 가족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먼저 내려놓아야 했는지, 그 기준이 바뀌던 순간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돈을 빨리 벌고 싶다는 조급함, 당장 해결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이후 모든 선택의 출발점이 됐다.
다음 글에서는
대리운전을 시작했을 때 마주한 현실, 밤에 버는 돈이 왜 내 답이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써보려고 한다.